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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 여행 Travel

[+132일 요행악어의 세계일주] 나의 옛날이야기. 음악이 전부였던 나의 세상이 무너졌다.


세계여행을 떠나기 4년 전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장 친한 동료들과 꾸려온 밴드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만보고 열심히 달려온지 약 3년만의 일이었다. 간략하게 이유만 말하자면 음악보다는 사람이 어려웠다.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배고픈 뮤지션은 아니었지만, 여유는 없던 그런 삶이었다.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밴드는 끝이 보였지만, 음악적으로는 나름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고, 나를 불러주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나 정말 이대로 괜찮은가...?'









통영 달아공원의 일몰.


그리고 그런 고민이 극에 달했던 날의 아침. 무작정 배낭을 메고 통영으로 떠났다. 늘 가보고 싶었지만 마음속에만 품고 있었던 그곳. 버스표도 없었고, 계획도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통영에서 2박 3일간 발걸음이 닿는대로 걷고 또 걷고 걸었다. 이것이 혼자서 떠난 배낭여행의 소중한 첫 걸음이었다.





대한민국의 문화재 수원 화성, 경복궁, 종묘, 창덕궁.


성공적이었던 통영 배낭여행을 계기로 더 이상 혼자다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즐기게 되었다. 귀찮아서, 바쁘니까 매번 다음으로 미뤄두었던 문화재들도 차례차례 방문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허전했던 무언가가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음악이 전부는 아니구나. 세상에는 음악말고도 참 재밌는 것들이 많구나.  





그렇게 떠나게 된 것이 4년 전 나홀로 떠난 2주간의 동남아시아 배낭여행이었다. 힐링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기에 예산을 넉넉하게 잡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렴한 동남아시아 물가를 생각하면 적지는 않은 돈이었다. 


혼자서는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이었지만, 구체적인 계획 역시 세우지 않았다. 단, 2주라는 시간을 고려해 큰 그림만 그려놓고 내가 갈 수 있는 범위의 정보는 최대한 수집해두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잘한 행동이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한국을 떠나 가장 먼 곳으로 향하던 순간. 무엇이 가장 설레이고 좋았냐고 묻는다면, 많고 많은 생각들 중 나의 대답은 '걸어서 국경을 넘는 것.' 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은 반도에 위치한 국가이지만 걸어서 국경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통일이 되지 않는 한 나에게는 평생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반도에 위치한 섬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두발로 국경을 넘는 그 기분을 한번이나마 느껴보고 싶었다.




방콕에서 만난 나의 태국 친구들.


배낭여행의 첫 번째 도시 방콕에서의 3일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현지인 친구가 가이드를 자청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한 동남아시아 국가 중 가장 경제력이 탄탄한 나라인데다가, 든든한 현지인 친구 덕분에 지내는 동안 모든 것이 순탄했다. 무엇보다 가장 걱정했었던 것이 음식이었는데, 걱정했던 시간들이 아까울만큼 입에 잘 맞았다. 마치 어렸을때부터 먹었던 음식처럼.. ㅋㅋ 





 즐거웠던 3일 간의 방콕 여행이 끝나고 두 번째 도시 캄보디아의 씨엠립으로 이동하는 날. 이른 새벽부터 버스타는 곳을 찾아 헤메이며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인연을 만나는 계기가 되어 '인생사 새옹지마' 라는 명언을 몸소 경험하기도 했다. 




배낭여행 4일 째 앙코르와트의 도시 씨엠립에 도착했다. 어둑해질 무렵 겨우겨우 숙소에 도착해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혼자가 되어있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내 스스로 헤쳐나가야 했다.





자전거를 타고 앙코르와트로 향하던 길.


씨엠립에서의 두 번째날. 아침 일찍부터 자전거를 빌려 호기롭게 앙코르와트로 향했다. 툭툭으로는 20분, 자전거로는 약 1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중간중간 지도를 체크하며 열심히 페달을 밟기를 약 40분, 매표소로 보이는 건물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본 직원이 한 첫마디는,



"여기는 매표소가 아니니까, 다시 돌아가서 표를 사서 오세요." 였다.. 심지어 또박또박 한국어로....ㅋ



그렇다. 그곳은 매표소가 아닌 검표소 였던 것이다... 40분을 미친듯이 페달을 밟아서 온 사람한테, 다시 40분을 돌아가서 표를 사오라니... 전적으로 지도를 잘못 본 내 탓이지만, 냉정하게 말하는 직원들이 어찌나 밉고 매정해 보이던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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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내 표정은 이랬을 것이다... 아마도..


그때 검표소의 직원 중 한명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로스트의 주인공 꽈찌쭈처럼 한번만이라도 행보카고시픙 내 표정을 숨길 수 없었나보다.



"내가 오토바이가 있거든. 매표소까지 왕복으로 태워줄테니까 2달러만 줘."



티켓 때문에 1시간 30분을 허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마치 악마의 유혹과 같은 제안이었다. 조금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에너지와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2달러 정도쯤이야 문제될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직원의 도움(?)으로 티켓을 구입하고 돌아서려는데 아까 그친구가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친구 내가 오늘 휴일이거든. 18달러에 일반적으로 가기 힘든 사원들 다 돌아줄게! 툭툭으로는 절대 못가는 곳들이라구. 나는 직원이라서 위치도 정확히 알고 있어."





왼쪽이 내 친구 "소칫", 오른쪽이 소칫의 친구 "미스터콤"


이것이 나와 그친구의 첫 만남이었다. 얄미웠던 앙코르와트 검표소 직원이 내 일일 오토바이 기사로, 그리고 나아가 보고싶은 내 친구가 된 것이다. 





씨엠림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반띠아이 쌈레', '반띠아이 쓰레이' 의 사진.





씨엠립 시내에서 오토바이로 1시간 30분이 걸리는 끄발스피온 유적.





라떼는 여행자라면 저렇게 입어야 되는 줄 알았다.. 정말이다... 최선이었다...


첫날 쏘칫과 씨엠립에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에 있는 유적들을 둘러보고, 둘째날은 혼자서 앙코르와트, 앙코르톰을, 마지막 날엔 다시 쏘칫과 함께 그랜드 써클에 위치한 사원들을 방문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평한마디 하지 않고 심지어 가이드와 사진기사 까지 자청하던 쏘칫. 조금 어설픈 영어였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 고맙고 감동적이었다.





"앙코르 와트 해자 옆에서 일몰을 보며 맥주 한잔. 맥주도 1달러, 안주도 1달러..♥"


마지막날 쏘칫과 계획했던 모든 사원을 돌고 약속했던 금액을 지불했다. 마지막으로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쏘칫이 말을 걸어왔다.



"맥주 한잔할래? "



그대로 다시 쏘칫의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앙코르와트 해자 옆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캄보디아의 과거에 대해서도, 현재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캄보디아의 미래에 대해서도.





앙코르와트의 해자 너머로 지는 태양.


캄보디아에 친구가 생겼다. 앞으로 보고싶고 그리울, 다시 만나고 싶을 친구가 생겼다.  




쏘칫과 쏘칫의 친구들과 함께 2차로 온 레스토랑의 음식. 통에 담겨있던 마늘 김치가 한국의 김치와 맛이 비슷했다.


앙코르 와트의 해자 너머로 태양이 졌다. 갑자기 쏘칫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를 마친 쏘칫이 나에게 말했다.


"첫날 검표소에 있던 친구 중에 한국말 하던 친구 기억나?! 그친구가 같이 한잔하고 싶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첫날 검표소에서 "여기는 매표소가 아니니까, 다시 돌아가서 표를 사서 오세요." 라고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냥 나같은 한국사람이 많아서 문장을 외운거라고 지레짐작했었는데, 실제로 만난 그 친구의 한국어 실력은 엄청났다.





사진의 오른쪽이 한국어 마스터 미스터 콤! 


그렇게 쏘칫의 동료이자 한국어 마스터 '미스터 콤' 이 합류하게 되었고 본격적인 2차가 시작됐다. 쏘칫이 데려간 레스토랑은 앙코르와트 근처에 있는 식당이었다. 저녁 6시 이후에는 손님이 없어 문을 닫아야 정상인데...? 알고보니 이곳은 앙코르와트를 관리하는 경찰 간부가 운영하는 가게였다...ㄷㄷ 오늘 마침 간부의 가게에서 경찰들의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고... ㅋㅋㅋ 쏘칫과 미스터 콤은 이들과 일면식이 있는듯 자연스레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를 주문했다.





2차 중간에 합류한 쏘칫의 친구 "미스터 한."


한잔 두잔... 다서 여섯잔 맥주가 비워져 갈때 즈음, 외국인이 현지인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모습이 신기하고 좋아보였는지 사장님이 직접 마당에 돌아다니는 닭을 잡더니 그자리에서 요리까지 해주셨다. 심지어 안주는 모두 무료였고 맥주값만 받으셨다. 뜻밖의 후한 대접까지 받은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다같이 앙코르와트 야경을 보러갔다. 당연히 앙코르와트의 내부까지는 들어갈 수는 없지만 완전히 어두워진 시간에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경험이었다. 모두 쏘칫과 친구들 덕분에 할 수 있었던 일들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잘못 찾아간 어이없는 실수가 이렇게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헤어짐의 순간이 왔다. 쏘칫과 친구들이 나를 숙소 앞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었다. 서로 가볍게 포옹을 하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목이 메어왔다. 생각해보니 요 몇년 간 그렇게 펑펑 운 적이 없었다.





씨엠립을 떠나기 하루 전날.. 친구의 연락을 기다리며 점심엔 인도요리, 식사 후엔 마사지.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4년 뒤. 나는 보고싶은 친구를 만나러 다시 씨엠립에 왔다. 그런데 친구는 답장이 없다... ㅠㅠ '그냥 미리 말해둘걸 그랬나...?! 괜히 서프라이즈 한다고 와서는... ㅠ ' 중간 중간 안부도 묻고 가끔 통화도 했는데.. 혹시 무슨일이 있는건가..?!





마지막으로 걸어 본 씨엠립의 펍스트릿.


하루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겨우 4년만에 만날 수 있는건가 싶었는데.. 아쉬움이 너무 컸다. '저녁에라도 연락이 오면 술이나 한잔할 수 있을텐데..ㅠ' 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결국 마지막날까지 친구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아니 올 수 없었다. 이유는 다음 포스팅에..





씨엠립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마치고는 숙소로 돌아와 배낭을 꾸렸다. 내일은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향하는 날이다. 캄보디아에서 만큼 많은 추억이 있었던 라오스. 과연 이번에는 어떤 인연을 만나게 될까?! 





캄보디아에서 만난 친구 쏘칫 만큼이나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했던 라오스. 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예감이 좋다. 




나의 옛날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