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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 여행 Travel

[+105일 베트남 후에] 화려한 카이딘황릉 뒤에 감춰진 응우옌 왕조 몰락의 역사.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인생 '분보' 를 흡입한 후 하늘을 찌를듯이 텐션이 올라갔는데, 날씨는 점점 암울해져 가는 미묘한 시츄에이션.. 일단 모든 것을 운에 맡긴채로 스쿠터에 올라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카이딘 황제릉' 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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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일 베트남 후에] 레알 킹왕짱 민망황제가 잠들어 있는 민망황제릉, 

다시는 찾을 수 없는 분보맛집.





카이딘 황제릉의 스쿠터 주차장.


'민망황제릉' 부터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카이딘황제릉' 까지는 스쿠터로 약 1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만약 '후에 시내' 부터 출발한다면 '카이딘 황제릉' 까지 약 30분 정도가 소요되고, 입장료는 다른 황제릉과 같이 100,000동으로 동일하다. (360,000동 종합티켓의 경우 카이딘 황제릉의 입장료가 포함되어 있음.)





카이딘 황제릉의 입구 계단. (Ung lang, Khai dinh's Tomb)


두둥!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카이딘 황제릉' 에 도착! 


대남국 응우옌 왕조의 무덤 중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카이딘 황제의 무덤은 앞서 방문했던 '민망황제릉', '뜨득황제릉' 에 비해 규모는 가장 작았지만, 다른 황제릉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화려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느낌의 양식의 건축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카이딘 황제릉으로 들어가기 전에 입구에서 인증샷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셋팅하고 있는데, 이게 웬일?! 입구의 넓은 계단이 텅~ 하고 비어있었다.


이때다 싶어서 재빠르게 달려가 사진을 찍고 결과물을 확인했는데 정 가운데가 아니네....!!? ㅠㅠ 그래서 다시 자리를 잡고 찰칵!!! 찰칵!! 찍었는데,





갑자기 먹구름 처럼 몰려드는 사람들..... ㅠㅠ  



(이래서 인생도 사진도 타이밍이 깡패라는 말이...)





카이딘 황제릉의 계단 난간에 조각되어 있는 용 석상의 섬세한 디테일.






카이딘 황제릉 중앙광장에 놓여져 있는 무인, 문인, 병사, 코끼리 말의 석상.


카이딘 황제릉 입구의 넓은 계단을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비석'이 놓여져 있는 '비각' 과 광장 좌우로 놓여져 있는 무인, 문인, 병사, 코끼리, 말의 석상이었다. 


무인 2, 문인 2, 코끼리 1, 말 1 의 구성은 다른 황제릉과 같았지만, 카이딘 황제릉에는 병사로 생각되는 석상이 6개 더 놓여져 있었다. 

   




모든 것 하나하나 디테일이 섬세했던 카이딘 황제릉의 구조물.


1920년 부터 1931년 까지 11년에 걸쳐 만들어진 카이딘 황제의 무덤은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로 편입되어 있던 시기에 지어졌다. 프랑스의 지배하에 아무런 힘도 권세도 없던 카이딘 황제의 무덤이라기에는 굉장히 화려하고 사치스럽지 않는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화려한 무덤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필요했는데, 그는 부족한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고역에 시달리던 농민들의 세금 30%를 올려 받았다고 한다. 



(카이딘 황제의 인기도가 -1000 포인트 하락하였습니다.)

  





비석이 세워져 있는 석재 건물과 공적비 (stele monument).


앙코르와트를 연상시키면서도 서양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섬세한 석조 건물안에는 그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었다. 프랑스 식민통치 아래 '꼭두각시 군주' 나 다름없었던 그의 업적 중 하나는 '베트남어의 표기 방식을 바꾸고 '베트남어' 를 공식언어로 지정한 것'.


원래는 한자로 표기되었던 베트남어를 지금의 영어식 표기로 바꾼 것이 바로 카이딘 황제라고 한다.




프랑스의 강력한 식민통치 아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카이딘 황제'. 이곳을 방문한 한국사람에게는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의 첫 번째 황제가 되었던 '고종' 과 마지막 황제로 막을 내린 '순종' 이 응당 떠오르기 마련이다.





카이딘 황제가 잠들어 있는 황제릉의 본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고종 황제에게 병약한 '순종'이 있었던 것 처럼, 카이딘 황제에게는 병약한 외동아들 '바오다이' 가 있었다. 


이 무덤은 카이딘 황제의 아들이자 마지막 황제였던 13대 군주 바오다이가 완성시켰는데, 정작 바오다이 황제 자신은 훗날 프랑스로 추방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여 끝내 베트남에 묻힐 수 없었다. 


이것이 카이딘 황제의 무덤이 대남국 황제릉 중 가장 마지막 무덤인 이유이다.


 



카이딘 황제릉 본관의 내부.


카이딘 황제릉의 가장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무덤의 본관에 들어서자 다른 무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장식들이 건물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석재만으로 지어진 카이딘 황릉의 외부를 처음 봤을때는 '가장 오래된 무덤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황제릉의 내부는 건물의 외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반전에 반전..





금박으로 도금 되어있는 카이딘 황제 동상(프랑스에서 주조) 아래 카이딘 황제가 잠들어 있다.


'황제' 라는 칭호뿐이던 카이딘 황제의 말년 역시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아버지를 닮아 유전적으로 병약했던 신체에 마약중독으로 인해 더더욱 병약해진 그는, 결국 후에 황궁에서 폐결핵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의 나이 40세가 되던 해였다.




화려함과 섬세한 디테일까지 겸비한 카이딘 황제의 무덤에 감춰진,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그의 일생과 응우옌 왕조의 역사. 


143년 간 지속 되었던 베트남 최초의 통일왕국 '대남국' 은 1945년 카이딘 황제의 아들인 13대 황제 바오다이를 끝으로 그 막이 내려지게 된다. 





카이딘 황제릉 내부에 전시된 카이딘 황제의 사진들.

 




카이딘 황제릉을 뒤로 하고 주차장으로 향하던 길, 투욱 툭..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금새 억수같은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 망했..... ㅠㅠ'




급한대로 황제릉 입구에 있는 전시실에 들어가 15분 정도 기다렸을까. 다행히도 거세게 퍼붓던 소나기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





는 커녕. 다시 미친듯이 퍼붓는 소나기에 물에 젖은 생쥐꼴이 되어버렸다.... ㅠㅠ 


아침부터 날씨가 너무 좋았던 탓에 우산도 우비도 안 챙겨 왔는데, 하필 지나던 곳이 숨을만한 나무도, 천막도 없던 곳이었다능... ㅠㅠ 정말 누가 위에서 세숫대야로 물을 퍼붓는 것 처럼 사정없이 비를 맞았다.. 



당연히 그 와중에 사진 찍을 정신은 더더욱 없어서, 후에 시내에 들어와서야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 알 수 있었는데...





후에 시민 수영장으로 바뀐 시내의 도로... ㅋㅋㅋ 나는 저 빗물을 내 몸으로 다 받아내었다. 하하하.. (눙... 눙물 좀.... ㅠㅠ)





먼저 숙소로 돌아와 말끔히 샤워를 마치고, 저녁에는 '트립어드바이저' 에서 찾은 또 다른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지난번 불고기 피자를 먹은 곳과는 다른 레스토랑이다.





베트남 후에 주카 이탈리안 레스토랑 (ZUCCA Restaurant). 





'후에' 에 도착한 첫 날밤 갔었던 '리조또 레스토랑' 에서 불고기 피자를 너무 맛있게 먹어서 또 다른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시도해보려고 찾은 곳인데, 희안하게도 리조또 레스토랑과 해피아워 프로모션이 똑같았다. 이 지역의 트렌드 인건지, 주인이 같은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맛은 리조또 레스토랑과 비교했을때 비슷했던 것 같은데 크게 감동은 없었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을 소화해내느라 부지런하게 돌아다녔던 '후에' 에서의 마지막 밤. 불금이라 그런지 번화가에 있는 펍마다 사람들이 가득하고, 열기가 흘러넘쳤다.


내일은 후에를 떠나 3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다낭' 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슬리핑 버스 안타도 되니까, 오늘은 맥주나 실컷 마시다 자야겠다!!! ㅋㅋㅋ 



다음 이야기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