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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일 베트남 하노이] 상처투성이 탕롱성이 품고 있는 베트남 1000년의 역사.


베트남 하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탕롱의 제국주의 시대 성채 중앙구역'

(The Central sector of the imperial citadel of thang long, World cultural heritage.)


앞선 포스팅에서도 간단히 소개했듯이, 하노이의 탕롱성은 11세기 대월제국 리(李)씨 왕조에 의해 건축된 커다란 성채였다. 


건축된 이후 몇 번이고 왕조가 바뀌며 치열한 쟁탈전이 펼쳐지던 권력자들의 서사 무대였지만, 18세기 초 응우옌(Nguyen) 왕조가 베트남 전국을 통일하고, 후에(Hue)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그 역할을 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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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일 베트남 하노이] 하노이 최고의 분짜 맛집 훙러우 분짜 (Hung lau Bún Chả), 

세계문화유산 하노이성 탕롱 유적.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탕롱성의 정문 '도안몬 문(Doan mon gate)' 의 내부와 옆문.


그렇게 약 8세기에 걸쳐 혼란과 번영의 시기를 동시에 누렸던 대월제국과 탕롱성은 19세기 말 프랑스의 식민 지배 아래 놓이게 되면서 대부분의 건물들이 해체되고 그자리에 프랑스군이 건설한 서양식 건물이 대체되고 만다. 현재 탕롱성 유적에서 오래된 건물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이다.




도안몬 문 위에서 보이는 광장과 깃발 탑.


탕롱성의 건물 중 해체되지 않고 살아남은 건물 중 하나인 '도안몬 문(Doan mon gate)'. 사실 '도안몬' 은 한자 '端門(단문)' 의 베트남식 발음이다. '도안몬 문' 이라는 표기 방식은 한국어로 치면 '동대문 문', '남대문 문' 과 같은 느낌으로 불리우고 있는 것.



도안몬문 - 단문(端門)


단문(端門)은 보통 궁전의 정전 앞에 있는 정문을 뜻한다. 


오랜시간 중국 명, 청나라의 궁궐로 사용되었던 '자금성' 역시 천안문 - 단문 - 오문의 순으로 궁궐의 문이 배치되어 있다. 




'도안몬' 의 역사적 기록과 과거의 사진들.





유리로 보호되어 있는 옛 탕롱성의 흔적들.


과거에는 정전까지 직선으로 이어져 있었을 도안몬 성벽의 안쪽은, 높은 울타리로 둘러싸인채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높은 울타리 앞에는 옛 탕롱성의 흔적들이 투명한 강화유리 아래 보존되고 있었는데, 더 이상 발굴이 진행되고 있지는 않는 듯 했다.





도안몬 한쪽으로 쌓여 있던 수 많은 보도블럭들과 파헤쳐진 공사구간. 


호기롭게 탕롱성 구경을 시작한지 약 20분 정도가 경과.. 탕롱성의 입구격인 도안몬을 이제 막 지났을 뿐인데 온 몸에 땀이 뻘뻘 흐르고 정신은 흐려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 속을 걷고 있는 듯한 이 느낌... ㅠㅠ '




'홍콩도 덥고 습했지만 베트남도 만만치 않다.....'


아침부터 제법 구름이 껴있던 날씨라서 적어도 덥지는 않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습도가 미칠듯이 높아져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하... 죽을 것 같아... ㅠㅠ' 하고 절망하고 있던 와중, 눈앞에 수상한 유리문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위잉~~'




'탕롱성 실내 유물 전시관'에 전시된 유물들.


사실, 처음에는 문인지도 잘 몰랐던 불투명한 유리문은 '실내 유물 전시장'의 입구였던 것. 어항과도 다름없는 바깥 날씨와는 다르게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낙원과도 같던 이곳.. ㅠㅠ 입구가 눈에 띄지 않는 탓인지 관람객도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어수선했던 외부와는 다르게 전시물도, 해설문도 반듯하게 전시되어 있던 내부 전시관. 넘쳐나는 영어의 압박에 모든 해설을 읽어볼 수는 없었지만, 대략적인 대월제국 역사의 흐름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탕롱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양식 건물.


천국과도 같았던 유물 전시관을 빠져나와 다시 어항 속으로..... 





탕롱성의 종각와 고각.





도안몬과 함께 살아남은 탕롱성 킨티엔궁의 계단(Steps of kinh thien palace)


'도안몬' 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탕롱성 곳곳에는 중국의 궁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건물의 배치 방식이나 양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놓여진 '종각' '고각' 이 그러했고, 3칸으로 나뉘어진 킨티엔궁의 계단도 그러했다.





제단 위에 올려진 한국의 초코파이와 카스타드.


프랑스군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킨티엔궁 대신 들어선 서양식 건물 '드래곤 하우스'. 그 앞에는 '왕좌' 를 연상케하는 제단이 세워져 있었고, 제단 위에는 어떤 이유에선가 한국산 과자인 초코파이와 카스타드가 올려져 있었다. 그만큼 한국산 과자가 '고급' 취급을 받고 있다는 뜻일까?! 음.. 맛있긴 하지. ㅋㅋ




유물이 전시되어 있던 또 다른 전시실.




전시장에서 볼 때에는 그냥 그렇구나~ 라고 넘어간 부분이었는데, 나중에 조사해본 내용에 의하면, 대월 제국의 사람들은 배수, 제방, 농업용 수력학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실내 전시장을 나와 걷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가랑비가 톡톡 쏟아졌다. 내릴거면 팍팍 내릴것이지..!!! 안그래도 높은 습도가 더 높아지던 절망적인 순간.. 





탕롱성 성문 아래서 전통복장을 입고 사진 촬영을 찍고 하고 있던 가족.





탕롱성 유적 직원들의 업무복.





서양을 중심으로한 제국주의가 전세계에 종식되어있던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 인도차이나 반도의 국가인 베트남 역시 제국주의의 희생양 중 한 국가였다. 


결국 1945년 일본군에게 패배한 프랑스군이 철수하면서 눈물겨운 독립을 맞이하게 된 베트남이지만, 머지않아 남북 분열과 동족 간의 전쟁이라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어디선가 참 많이 들어본 스토리 아닌가.




북 베트남군의 본부로 쓰였던 건물 내부.


비가 조금 잦아들자 탕롱성의 킨티엔궁 뒷 편의 구역으로 향했다. 드래곤 하우스 뒷 편의 넓은 구역에는 베트남의 영웅 호찌민이 이끌던 북 베트남군의 본부로 쓰이건 건물과 지하 벙커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탕롱성의 지하벙커 D67 Tunnel 의 입구.


혼란스런 전쟁 속 방공호의 역할을 했던 D67 터널은 당시의 분위기가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영어명이 '벙커' 가 아닌 '터널' 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방문객에게 공개되는 범위가 한정적인 듯) 




'지하니까 시원하겠지?! 후후후후' 라는 나의 기대를 철저히 부숴버린 D67 터널... 물을 잔뜩 뿌린 오븐 속에 들어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쩜 이래....?!



오늘의 가르침 - 지하라고 해서 모든 곳이 다 시원한 건 아니다. 





10세기 대월제국의 역사부터 20세기 현대 베트남 역사에 걸쳐 약 10세기 동안의 베트남 역사를 고이 품고 있던 상처투성이 탕롱성.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궁궐' 의 이미지를 가지고 방문하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지만, 베트남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방문한다면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고,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마무리 되는 줄 알았던 탕롱성의 견학은 우연히 눈 여겨 보게 된 '탕롱성 견학 순서도' 로 인해 조금 더 연장되었다... (안본 눈 삽니다..) 탕롱성 중앙 유적 길 건너편에 또 다른 유적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호앙지에우 18 고고학 유적지(18 Hoang Dieu archaeological area) 의 입구.


 미칠듯이 덥고 습한 베트남의 날씨에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혹시.. 실내 전시관이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 하나만으로 향하게 된 호앙지에우 18 고고학 유적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다음 이야기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