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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061일] 슬픈 역사의 종점.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세계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지도를 보는 횟수가 굉장히 많아졌다. 특히 여행의 루트를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서 경비와 시간을 동시에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틈틈이 지도를 켜놓고 루트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청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행선지를 정하기 위해서 호스텔의 로비에 앉아 지도를 켜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 중 불현듯 눈에 들어온 것이 '충칭' 이라는 도시였다. 막연히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지명이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온 충칭이지만, 커다란 양쯔강이 흐르는 충칭의 풍경은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복잡한 길을 따라 높게 솟아있는 빌딩은 중국 그 어떤 도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된 또 한 가지 사실. 상하이에만 있는 줄 알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충칭에도 있었다. 어떻게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는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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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060일] 전자레인지가 필요없는 중국의 셀프 히팅 도시락. (블로그 작업한 날)

 





호스텔 근처의 고층빌딩 숲.


일방통행 2차선 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골목을 사이로 50층이 훌쩍 넘어가는 고층빌딩들이 즐비해 있는 충칭의 흔한 골목길. 특히 내가 묵고 있는 호스텔 주변은 사방에 고층 빌딩이 에워싸고 있어 탁 트인 풍경을 보기 힘들었다.





오늘의 아침 겸 점심으로는 볶음밥과 마파두부를 먹었다. 볶음밥이야 원래 많이 양이 많다고 쳐도.. 마파두부는 왜 또 저렇게 많이 나오니.. ㅠㅠ 어쩔 수 없이 2명이서도 충분히 먹을 양을 혼자서 우적우적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먹어 치웠다. 가끔 나도 내 스스로가 놀랍다. 





3일 전 충칭에 처음 도착했던 날, 심장을 부둥켜 잡고 내려 갔던 어둡고 좁은 골목길이 낮에는 북적북적 사람냄새가 가득한 상점가로 변해있었다.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심해도 너무 심한거 아니오..?!' 오늘은 어두워 지기 전에 돌아와야지.. ㅠㅠ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 찾아가는 방법은 크게 어렵지 않다.


지하철 1호선 치싱강(七星岗 칠성강) 역에 내려서 1번 출구로 나가,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임시정부 청사 건물까지 찾아가면 된다.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는 저렴한 방법인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임시정부 청사의 근처 까지는 바이두 맵에 나온 결과와 같이 커다란 도로를 따라서 걷기만 하면 된다. 




치싱강 지하철역에서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 가는 길, 높게 쌓여있는 성벽 주변으로 생동감 넘치는 병사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 곳은 옛 충칭성의 '통원문(通远门)' 있던 자리로, 충칭성의 17개의 성문 중 내륙으로 통하는 유일한 성문이었다. 때문에 커다란 전투가 이 곳에서 몇 차례 발생했었는데, 그 유명한 '이자성의 난' 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큰 도로를 따라서 약 10분 정도 걷다보면 정면에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진열관' 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이정표가 가르키는 골목길을 따라 1분 정도 걸으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입구가 보인다.





'정말 여기에 있다고..?'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건물은 좁은 골목길을 따라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골목을 따라 1분 정도 걸어 들어가니 5,6층 정도 되는 주택단지 사이에 푸른빛이 감도는 회색 담장이 눈의 들어왔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하얀색 글씨가 이 곳이 역사의 현장에 있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大韓民國臨時政府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충칭의 임시정부는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일제 강점기에 마지막으로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이다. 보통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라고 하면 익히 잘 알려진 '상하이 임시정부' 가 떠오르는 것이 사실. 그렇다면 어떻게 대한민국의 임시정부 청사가 중국의 깊숙한 내륙인 충칭까지 가게 되었을까?!


1919년 상하이에 자리잡고 있던 대한민국 첫 임시정부 청사는 중국까지 손을 뻗쳐오는 일본 제국의 탄압을 피해, 난징, 광저우 등 중국 각지로 이동해 다닌다. 그러던 중, 중일 전쟁이 발생하면서, 1938년 중국 국민당이 충칭을 임시수도로 지정하게 되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1940년에 중국 국민당을 따라 본거지를 충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후 1945년, 한국이 일본으로 부터 독립하기 전 까지 사용된 대한민국의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가 바로 이 곳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이다.


한국의 광복 이후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던 임시정부청사 건물은 1990년 중국 정부와 한국 정부의 협력 하에 복원 사업에 착수해, 1995년 8월에 다시 개관하게 되었다. 




다시, 충칭 임시정부 청사로 돌아와서.


입구에서 간단하게 가방 검사를 받고 내부에 들어오면 오른쪽 건물에 관람객 안내센터가 있다. 리셉션에 앉아있는 직원은 중국분이었는데, 아주 능숙하게 한국말을 할 줄 알았다.




원한다면 관람객 안내센터에서 가이드 투어를 신청할 수도 있다. 가격은 중국어가 80위안, 그 외 외국어가 120위안이었다. 한국의 역사와 관련된 곳이지만, 대부분 여행사 투어로 방문하는 모양인지 가격표에 한국어가 따로 분류되어 있지는 않았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입구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풍경이다. 아침부터 촉촉하게 내리던 비 덕분에 건물의 색도 바닥의 색도 짙게 변해, 한층 더 분위기가 있어 보였던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의 내부. 





각 건물에는 간략하게 건물에 대한 소개와 평면도가 그려져 있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2층으로 된 1호 건물은 주로 전시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이었는데, 내가 방문했을 당시엔 1층과 2층이 모두 닫혀있었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2호 건물의 입구.


2호 건물의 내부의 1층에는 식당이, 2층에는 외무부, 외무부 부장실과 회의실이 있다. 전시되어 있는 가구들이 당시에 사용되던 것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제법 사용감이 있고 오래되어 보여서 그런지, 시간을 거슬러 온 듯한 느낌이 마저 들었다. 




칠이 벗겨진 테이블과 동그란 나무 의자. 한 때 '식당' 으로 쓰여졌던 이 공간에서는 한쪽에 설치되어 있는 TV를 통해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영상 자료를 감상할 수 있었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2호 건물 2층에 있는 회의실과 외무부 부장실.


식당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아래층 식당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회의실에는 20명 남짓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벽면에는 빛 바랜 태극기가 걸려있었다. 영화 '암살' 같이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2호 건물에는 작게 마련된 기념품 상점도 있다. 


이 곳에서는 메밀차를 무료로 제공하고, 와이파이 역시 무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기념품을 둘러보면서 잠시 들려가기 좋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3호 건물.


3호 건물에는 재무부, 법무부, 내무부 사무실로 쓰였던 공간이 전시되어있다. 법무부의 최동오 선생, 내무부의 신익희 선생, 재무부의 조완구 선생의 이름과 사진이 각 부서의 역할을 설명하는 안내문과 함께 전시되어있다.





4층으로 되어있는 임시정부 청사 5호 건물은 1,2층은 전시장으로, 3,4 층은 관리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1층에는 한국, 중국에 관련된 기획전시물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크게 볼 내용은 없었다.





2층에는 충칭 임시정부 청사에서 가장 고풍스러운 분위기 풍겼던 외빈 접대실이 재현되어 있었다. 당장 영화 촬영장 세트로 써도 될 만큼 바닥부터 천장, 배치되어 있는 가구들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임시정부청사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4호 건물.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4호 건물은 이 곳에서 활동하던 임시정부 요원들의 집무실 겸 숙소로 쓰였던 건물이다.  





임시정부가 떠난 후 일반 거주지로 사용되었던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완전히 철거 되었던 4호 건물은 90년대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복원 사업 때 고증을 거쳐 다시 복원된 건물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했다고 해도 믿을법한 분위기가 연출되어 있었다.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이 어떤 공간에서 생활했고, 어떻게 일을 했었는지 느낄 수 있었던 공간이었달까.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서 가장 많은 걸 생각하게 되고, 많은 것이 느껴졌던 곳이었다.  





충칭 임시정부 청사에서 마지막으로 관람한 곳은 3호 건물의 3층에 위치하고 있는 주석실.




대한민국의 주권을 가진 국민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하고, 알 수 밖에 없는 백범 김구 선생은 1940년 이 곳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선출되었다.




김구 선생이 사용하던 주석실을 재현해 놓은 모습. 


아래 구절은 백범일지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지금 한국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어쩌면 김구선생이 바랬던 이상향과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편 중 [백범일지]




충칭 임시정부 청사 내부를 거의 다 둘러 봤을 때 쯤, 아래 쪽에서 웅성웅성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들려오는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니 한국 여행사에서 온 그룹 투어의 관광객들이었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보통 이렇게 투어로 찾아오는 듯 했다.




마지막으로 임시정부 청사에서 인상이 깊었던 곳들을 한번 씩 더 둘러보았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는 곳이기 때문에 조금 더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나 스스로를 굉장한 애국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는 다시 한번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그런 장소였던 것 같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 대해서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나아가서는 한국과 관련된 다른 나라의 역사까지도 말이다.


계획에 없던 도시를 와보고 예상치 못했던 장소를 방문하면서, 모르던 것을 하나 둘 씩 알게 되고 공부하게 되는 것이 세계여행의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 싶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