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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 여행 Travel

[+126일 캄보디아 프놈펜] 청아익 킬링필드 추모센터. 삐뚤어진 신념이 만든 비극의 장소.


Imagine - John Lennon (영화 킬링필드 OST)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you)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어제 방문했던 뚜얼슬랭 대학살 추모 박물관에 이어서 오늘은 프놈펜에서 15km 떨어져 있는 청아익 킬링필드에 방문할 예정. 출발하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출발 전, 4년 전 캄보디아 여행에서 터득한 '유명한 관광지 주변에는 맛없고 비싼 음식점들이 가득' 하다는 경험을 살려서, 프놈펜 시내의 쇼핑몰에서 점심을 해결한 뒤 킬링필드로 향했다.  







프놈펜 시내의 'Sorya center point' 쇼핑몰 푸드코트.


오늘의 점심식사 장소인 'sorya center point 쇼핑몰' 의 푸드코트는 다른 무엇보다 에어컨이 빵빵하다는 점이 최고의 장점이었다. 그리고 쇼핑몰인 만큼 푸드코트 내부도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어 점심을 먹고 쉬어가기 딱 좋았던 곳!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음식의 종류가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 


하지만 대체적인 음식의 가격이 2~3달러 선으로, 오히려 시내에서 관광객들이 주로 가는 식당에서 먹는 것 보다 훨씬 저렴하면서도 위생적이었다. 





푸드코트에서 주문한 소고기 볶음밥 10,000리엘 (Beef fried rice 10000KHR)


내가 주문한 음식은 소고기 볶음밥. 캄보디아 돈으로 10,000리엘이었다. 캄보디아 물가치고는 살짝 비싼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쇼핑몰에서 한국돈 3000원을 내고 한끼식사를 한다고 치면 마냥 나쁘지는 않은 가격. 가장 중요한 맛은 그럭저럭 무난한 편이었다.



1000 캄보디아 리엘 (KHR) = 300 대한민국 원 (KRW)


캄보디아 현지 화폐인 '리엘' 은 1 USD를 기준으로 약 4000 리엘 정도의 가치를 가진 돈으로, 쉽게 생각하면 10000리엘은 2.5달러 한국돈 3000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캄보디아의 관광지라면 대부분 달러와 리엘을 모두 사용할 수 있고, 보통 1USD = 4000KHR 고정환율을 적용하는 편이다. 


주의할 점이 있다면, 훼손되거나 오래된 달러는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씨엠립에서). 그렇기에 거스름돈을 받을 때 반드시 한장한장 꼼꼼하게 확인하고 받자. 1달러 미만의 거스름돈은 보통 현지화폐인 리엘로 거슬러 준다.




식사 후에는 그랩(Grab) 어플로 툭툭을 호출해서 청아익 킬링필드로.





프놈펜을 출발한지 약 30분이 지났을때 즈음, 편안한 승차감을 자랑하던 툭툭 뒷 자석에 심상치 않은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계속 가다간 나의 소중한 척추가 1.8센치는 줄어들 것 같아 기사님에게 말했더니, 타이어가 펑크 났다고... ㅋㅋ





결국 타이어 교체를 위해 약 20분 간 정차... ㅠ 툭툭에서 내려 마을 구경을 하고 있는데, 눈앞에 '조광페인트' 라고 써있는 조끼가 뙇!! ㅋㅋㅋ 순간 한국인 줄 착각할 뻔. ㅋㅋ


 




청아익 킬링필드 대학살 추모센터의 입구. (Choeung Ek Genocidar Center).


프놈펜 시내에서 3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1시간 하고도 10분여만에 도착... ㅋㅋ 타이어가 펑크난게 기사님 잘못은 아니니까 그러려니 하고 가볍게 웃어 넘겼다. 항상 건강하고 부자되세요^^  




청아익 (또는 충에크) 킬링필드 추모센터의 입장료는 $6 달러 (오디오 가이드 포함). 별도로 성인과 학생의 요금을 구분해두지 않은 것을 보아, 외국인이라면 모두 동일하게 징수하는 듯 했다. 


매표소에 6달러를 지불하면 3달러 짜리 입장권과 3달러 짜리 오디오 가이드 교환권을 각각 한 장씩 건네준다. 





오디오 가이드는 뚜얼슬랭 대학살 추모 박물관보다 많은 총 15개의 언어를 지원하고 있었다. 물론 대한민국의 언어인 한글도 포함!





오디오 가이드의 사용방법은 뚜얼슬랭 대학살 박물관의 것과 완벽하게 동일하다. 해당 구역의 번호를 오디오 가이드에 입력하면 해설이 시작되는 시스템. 해설의 한국어 번역도 완벽하고, 설명 역시 굉장히 구체적이므로 3달러의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





청아익 킬링필드 추모센터 위령탑의 모습.


 청아익 킬링필드 견학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곳 킬링필드에서 희생된 분들을 기리기위해 세워진 위령탑이다. 포스팅 마지막에 다시 언급할 예정이지만 탑의 내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유골들이 안치되어 있었다.



'킬링필드' 란. (Killing field).


1975년 캄보디아의 수도를 점령한 '크메르 루주' 군이 무고한 캄보디아의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집단으로 매장했던 곳을 말한다. 캄보디아 전역에 100여 곳이 넘어가는 킬링필드가 있으며, 필자가 방문한 청아익(또는 충에크) 킬링필드 역시 100여 곳의 킬링필드 중 하나이다.  




현재는 '터' 만 남아있는 청아익 킬링필드.


이곳 청아익 킬링필드는 단어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학살된 뒤 매장된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다. 캄보디아 전역 100여 곳에 이르는 킬링필드 중 한 곳이며, 주 목적은 뚜얼슬랭 수감소에 매장된 시체들이 부패하여 전염병이 돌 것을 우려한 나머지, 프놈펜에서 15km 떨어진 이곳에 집단 학살, 매장지인 '킬링필드' 를 조성한 것이다. 나쁜ㅅ.....





때문에 1970년대 당시 사용되었던 건물들은 모두 철거 혹은 파손되었고, 현재는 건물이 있었던 터에 해설문과 당시 건물의 모습을 재현한 그림이 대신 세워져있었다. 





오디오 가이드에서 흘러나오는 해설은 담담하면서도 애절했다.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에 목이 매이고 가슴이 움츠러들었다.



뚜얼슬랭에 수감되어 있다가 처형 판결을 받은 수감자들은 해가 질때 즈음 '새로운 주거지로 이동한다' 는 거짓 명분을 앞세워 이곳 킬링필드로 이송되었고, 대부분 하루를 넘기지 못한 채 이곳에서 차례차례 처형된 후, 매장되었.




한 곳에서만 450명의 유골이 발견된 집단 매장지.


현재 청아익 킬링필드에서 발굴된 매장지 중 가장 많은 유골이 발견된 곳은 한번에 450명이 매장된 사진 속의 장소이다. 이곳을 방문한 수많은 추모객들이 남긴 팔찌가 사각으로 된 울타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청아익 킬링필드 추모센터에서는 지붕이 설치되어 있던 집단 매장지 이외에도 수십 곳이 넘어가는 매장지를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유골을 수습한 뒤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상태. 때문에 아직도 비가 많이 내려 토사물이 쓸려 내려가면, 제대로 수습되지 못한 유골의 조각들이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한 시간 가량이 지났을때 즈음, 킬링필드 위에 세워져 있는 19개의 번호판 중 11번 째 번호판에 도착했다. 이곳은 킬링필드의 동쪽에 있는 호수변 산책로를 걸으며 잠시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곳이다. 이제 겨우 중간 쯤 왔을뿐인데, 마음과 정신에 금이 간 듯 주체할 수 없을만큼 감정이 소모되어 있었다.





새의 저저귐 조차 없이 조용했던 킬링필드의 산책로. "자박자박" 흙길 위를 걷는 발걸음 소리 조차 시끄럽게 들릴 만큼 '고요함' 그 자체의 공간이었다.





고요한 산책로를 따라 듬성듬성 놓여있는 벤치에 걸터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북받친 감정이 조금이나마 사그라들었을 때 즈음, 다시 이어폰을 끼고 남아있는 해설들을 천천히 귀에 담아 들었다. 


겨우 35년 전에 일어난 일들이라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고, 야만적이었으며, 무지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