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만 봐서는 알 수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던 사천 박물관. 역시 사람이던 건물이던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나 보다. 2~3시간이면 다 볼 줄 알았던 사천 박물관은 무려 10개나 되는 전시관을 가지고 있었고, 다 둘러보는데 무려 5시간 반이나 걸렸으니 말이다.
조금 힘들었지만 알찼던 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나오니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간단히 배도 채울 겸 이틀 전 콜린과 함께 방문했을 때 완성하지 못했던 미션도 클리어할 겸 도보 30분 거리에 있는 콴자이샹즈로 향했다. 먹으면 마음다치는 빌런은 음식은 마지막에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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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053일] 청두 사천박물관에서 인도의 유명인과 마주치다.
이미 다섯 시간을 내내 서 있었음에도 불구, 도보 30분 정도 걸리는 콴자이샹즈까지 걸어온 이유는 단 하나. 점심으로 먹은 마파두부가 아직 소화가 안됐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음식 남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데 불같이 매운 마파두부 뚝배기를 다 먹어 치운다고, 양푼 한가득 나온 밥을 다 뱃속에다가 넣어버린 것이 원인... 아직도 트림을 할 때마다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마파두부의 향이 올라오고 있기는 하지만, 30분 정도 걸었더니 겨우겨우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긴 느낌이다.
다시 찾아온 콴자이샹즈
이틀 전 콜린과 함께 콴자이샹즈에 왔을 때는 주말이라 사람이 많은가 싶었는데, 이 곳이 중국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나보다. 평일임에도 불구, 처음 왔던 일요일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들이 좁은 콴자이샹즈의 골목들을 꽉꽉 채우고 있었다.
전통극 분장을 한 호객꾼.
콴자이샹즈 같은 관광지는 여럿이 함께 오는 것과, 혼자서 오는 것에 뚜렷한 장단점이 존재한다. 먼저 여럿이 함께 오는 경우, 길거리에 펼쳐져 있는 음식들을 저렴하고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는 점과 서로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하지만 사람이 많은 만큼 단체행동을 해야 하기에 자율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반대로, 혼자서 오는 경우에는 길거리 음식을 하나만 먹어도 배가 차기 때문에 매우 신중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큰 단점이 존재하지만, 내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 구석구석 가볼 수 있고, 맘에 드는 곳에 얼마든지 오래 있을 수 있다는 매혹적인 장점이 존재한다.
전통극 분장을 하고 있는 배우.
이틀 전 콜린과 함께 왔을 때에도 물론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정작 콴자이샹즈의 모습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은 느긋하게 콴자이샹즈를 걸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려 한 것.
5미터도 채 되지 않는 좁은 골목들 사이사이로 걷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풍경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틀 전 콜린과 함께 지나갔었던 전통극 공연장에서는 배우로 보이는 사람이 분장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또 다른 공연장 앞에서는 빨간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연주자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고쟁 (가야금과 비슷한 중국 악기.) 을 연주하고 있었다.
무엇 하나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혼자하는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니까. 눈에 보이는 것 중에 조금이라도 눈길이 가면 그 길로 발길을 옮기면 된다 (스웩). 중국이 쏘아올린 '중국판 다이소' 인 미니소에 들어가서 구경도 해보고,
옛 스런 골목길을 따라 사람 구경을 하다보니 슬슬 배에서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콴자이샹즈에 온 또 다른 이유! 길거리 음식 먹어보기 시간이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신서유기2에 잠시 나왔던 파인애플밥.
이제 정말 신중해져야 할 시간이다. 함께 하는 동료가 없기에 내가 먹을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은 많아야 1~2개 정도. 정말정말 힘내면 3개. 신서유기2에 나왔던 파인애플밥이 눈에 밟혔지만, 여기까지 와서 밥으로 배를 채울 수 는 없는 노릇이다.
고기 볶음, 소세지, 쫑즈, 감자튀김, 량펀, 만두, 도너츠 등 엄청난 종류의 음식들. 멀쩡한 사람에게도 결정장애를 유발시킬만큼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너도나도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나름 청두의 명물(?) 인 토끼머리.
하지만 아무리 배가 고파도 예외도 있었으니.. 바로! 토끼머리.... ㄷㄷㄷ 난 아직 너를 먹을 준비가 안 됐단다. 아마도 평생.... 다음 생에서도...? 심지어 같은 호스텔에서 만난 한국 분은 토끼머리를 먹고 장염이 생겨서 아직도 고생을 하고 계시는 중. 너랑 나랑 인연은 평생 없는걸로.. ㅋㅋ
나중에 여자 친구에게 토끼머리 이야기를 했더니 "이거 중국에서 엄청 유행했던 드라마 장면이야" 라면서 보내준 유튜브 영상. 포장마차에서 남주인공이 썸녀에게 토끼고기 먹였는데, 썸녀가 어떻게 귀요미를 먹을 수 있냐며 엉엉 우는 장면인데, 썸녀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자꾸만 보게 된다. ㅋㅋㅋ 여러분~ 토끼 사랑하고 썸녀도 울리지 말아요~ ㅋㅋ
토끼 머리는 그냥 사진만 찍고 다른 가게들을 두리번 거리다가, 결국엔 신서유기2에 약 5초 정도 출연한 도너츠 꼬치를 집었다. 제발 맛있어라... 제발...
긴 말은 안하겠다. 사진이 대신하리라... ㅠㅠ
차갑고 퍽퍽한데 달달한 도너츠.. 안녕.... 아디오스....
망고쥬스로 입가심을 할까 일곱 번 정도 고민하다가, 일단 또 다른 음식을 먹어보고 결정하기로.
콴자이샹즈에서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가게 여러 곳을 돌아다녀 본 결과, 음식의 종류가 다양하기는 했지만 의외로 중복되는 음식이 굉장히 많았다. 뭘 먹냐도 중요하지만, 앞서 먹은 도너츠에서 얻은 교훈은 '뭐든 좋으니 갓 만들어낸 뜨거운 음식을 먹자' 였다.
도너츠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은 잠시 내려두고 다시 새로운 음식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그때! 후끈후끈 열기와 이성의 끈을 놓아버릴 듯한 기름진 냄새가 솔솔 풍겨오는 곳이 있었으니. 나는 잠시 이성을 내려두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냄새를 따라갔다.
세상에나...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다 있는 게 아닌가. 새우튀김, 꿀떡, 튀김빵... 심지어 이곳은 아까 먹은 것과 같은 도넛 꼬치도 새로 튀겨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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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t up and take my money!!!!!!
챱챱챱챱챱챱챱챱챱챠....압........ 챠.............................. 압................
구두도 튀기면 맛있다고 한 사람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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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예외는 있는 걸로.
야심차게 고른 길거리 음식 두 종류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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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신에게는..... ㅋㅋㅋㅋ 드립 너무 난무하는 것 같아 여기까지.
드디어 마지막! 콴자이샹즈에서 해야할 미션만 남았다.
벌써 2년도 더 지나버린 옛날 예능이지만, 너무 재밌게 봤던 신서유기2. 아침 기상미션으로 신서유기 멤버들이 콴자이샹즈 골목에서 말을 찾는 미션이 있었는데, 그 말들을 실제로 보고 싶었다. 가장 큰 한 마리는 콜린과 함께 왔던 날 찾았는데, 나머지 한 개는 도무지 보이질 않아서 몇 번을 찾고 또 찾아봤지만 결국 실패. 그래서 오늘은 꼭 찾겠다는 신념으로 약 한 시간가량을 찾아 헤메인 결과!!!
정말 허무하게 몇 번이나 지나쳤던 위치에 있었다... ㅠㅠ 어쨌든 찾아냈고 인증샷까지 찍었으니 미션은 성공!!!! 했지만.. 왠지 진 느낌.
말 찾다가 덤으로 찾은 다른 말 한 마리까지 컬렉션으로 모아 놓고 보니 뿌듯하긴 하네. ㅋㅋ 신서유기를 재밌게 봤다면 한 번쯤 도전해봐도 좋을 미션. 청두의 콴자이샹즈에서 말 찾기!
위의 사진은 말 한 번 찾아 보겠다고 정말 이곳 저곳 뒤지고 다니다가 발견한 장소. 복잡한 콴자이샹즈 메인 골목에서 몇 골목만 벗어나면 이렇게 평화롭고 한적한 동네도 걸어볼 수 있다.
저 자세로 꼼짝도 않고 한 곳만 바라보며 주인만 기다리던 영리한 강아지. 우쭈쭈해도 눈 길 1도 안 줬음.
어느덧 콴자이샹즈에도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나의 어두운 미래도 나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란저우에서 만난 중국친구 찡찡이 '청두에서 반드시!! 먹어봐야 할 음식' 이라며 강력 추천해준 청두의 명물 중 한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 주변에 있는 공유자전거를 잡아타고 식당이 있는 번화가로 향했다.
페달을 밟고 달리고 밟고 달리고 달려서 도착한 곳은!
춘희로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객가토량분(客家土凉粉) 식당.
지하철 춘희로(春熙路 춘씨루) 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객가토량분(客家土凉粉) 이라는 자그마한 식당. 본점은 청두 시내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청두 시내에 있는 분점으로 왔다.
이 곳에 온 이유는 찡찡이 추천해준 음식 중 상심량분(伤心凉粉 샹씬량펀) 이라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이다. 자리에 앉아 '이모! 썅신량펀 하나요! 진.짜. 쪼끔만 맵게 해주세요!' 진지하게 궁서체로 주문한 뒤 초조한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렸다.
음식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음식은 단어 그대로 '상심' 하는 음식이다. 요즘 말로 '마상' 하는 음식이라는 이야기. 너무 매워서 먹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기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인데, 나 같은 맵찔이에게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음식이라는 것. 참고로 나는 불닭볶음면 한 젓가락이 내 인생의 최고 기록이다. (물 열 컵 마셨음)
청두 객가토량분의 상심량분. 가격은 8위안. (한화로 약 1400원)
잠시 후에 밥 공기보다 조금 큰 그릇에 담긴 음식이 테이블 위에 탁! 하는 소리를 내며 무심하게 올려졌다.
"저기 이모 이거 진짜 덜 맵게 한 것 맞죠...?"
"응 맞아 제일 안 맵게 한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먹어봐~!"
먼저 슥슥슥슥 비벼준 후 비쥬얼을 탐색해 봤는데, 생각보다 빨갛지도 않고 냄새도 고소하니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젓가락 두 젓가락 입으로 흡입을 시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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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ㅁ.... 아니 이ㅁ... 스... 슨생님... 안 맵다면서요..... 제일 안 매운 거라면서요... ㅠㅠ"
정말 눈물 콧물이 멈추지 않고 질질 흘렀다.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 입으로 불을 뿜어대며 쉴 새 없이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맵다고 난리를 피는 바람에 작은 가게 안의 사람들이 시선이 모두 나에게로 집중됐다.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팝콘만 들면 영화관이었겠지... ㅠㅠ
그릇 위에 남아있는 치열했던 현장...
불닭볶음면 정도는 가뿐하다면 청두의 '상심량분' 을 꼭 한번 도전해 보시길... 이 못난 맵찔이는 그저 엉엉 웁니다... ㅠㅠ
정말 연가시처럼 물을 마셔 댔는데도 매운맛이 진정이 안되길래, 이모님에게 뭐든 좋으니 매운맛을 가라앉힐 수 있는 음식을 달라고 주문했다.
눈물 콧물 질질 짜며 괴로워하는 나를 보며 껄껄껄 즐거워하시던 이모님은 주방에 들어가시더니 달달한 설탕시럽에 쫄깃한 떡이 들어있는 디저트를 내어주셨다. 사르르 위 속까지 전해지는 달달한 맛.. 정말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매운맛과 달달한 맛을 이 날 모두 경험한 듯하다.
예상된 결말이지만, 이날 저녁 숙소에서 몇 번이고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렸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지만, 출산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실감해 볼 수 있는 밤이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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