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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045일] 비 내리는 날의 축축한 감성으로 떠나가는 우루무치.

여행은 날씨 운이 굉장히 중요하다. 나처럼 장기간 여행을 하는 경우라면 비가 억세게 쏟아지는 날, 하루 이틀 정도는 숙소에서 차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황금 같은 휴가, 피 같은 돈을 써서 짧은 기간을 여행하는 여행자에게는 한 시간, 일 분, 일 초가 굉장히 소중하다. 즉, 비 내리는 날은 제비뽑기로 치면 '꽝 오브 꽝'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본다면 꽝 같은 날씨가 '당첨!' 으로 변할 수도 있다. 비가 내리는 날 분위기 있는 재즈 바에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마시는 와인 한 잔, 분위기 있는 카페에 앉아 마시는 따뜻하고 향긋한 커피 한 잔, 비에 흠뻑 젖어있는 자연 풍경을 카메라로 담는 일.


비가 촉촉하게 내린 곳에 드리우는 짙은 색채. 오늘 내가 걷고 서있는 이 곳 인민공원에는 비 내리는 날에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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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045일] 아름다운 튤립이 가득했던 5월의 우루무치 인민공원. 우루무치에서의 마지막 날.





포토샵으로도 내기 힘든 비 내리는 날의 축축한 감성. 


여행 전에는 사진의 'ㅅ' 도 모르는 나였지만, 여행을 시작하고 부터 사진 찍는 재미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 무미건조한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추억과 사진이 함께 남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순간을 있는 힘껏 즐기려면 사진은 때때로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사진을 남기는 것은 머릿 속 회상으로만 남겨두기 아까운 추억들을 생생한 기억으로 다시 되돌려 주고는 한다. 그 날의 꽃의 색이 어땠는지, 하늘의 구름이 어땠는지, 그 날의 내 모습은 어땠는지 말이다. 




노란 꽃들을 보며 감상에 빠져있는 순간, 빗방울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하더니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다. 눈 앞에 보이는 정자에 들어가 잠시 비를 피했다. 후두두둑 쏟아지는 무거운 빗소리와 칙칙한 비 냄새는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




10분 가량을 열심히 퍼 붓던 비가 서서히 멎어들기 시작했다. 공원 한편에 있던 놀이기구들은 운행을 멈춘 채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원 반대편 끝에 높게 솟아 있던 UFO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을 지나서,





이미 축축하게 젖어버린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구불구불 풀과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와 둥둥 물에 떠다니는 큰 풍선이 있는 호수도 나오고, 중간 중간 있는 크고 작은 광장들을 마주하게 된다. 




홍산공원처럼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비 오는 날의 공원의 감성이 넘쳐 흘렀던 인민공원. 비 내리는 날의 산책은 이 것으로 마무리 짓고, 밀려있는 블로그를 작성하기 위해 호스텔로 향했다.




호스텔에는 이미 일본인인 나리형님이 호스텔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사진 정리를 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고 있는 여행자인 만큼 흔하게 볼 수 없는 사진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텐트에서 자면서 여행하면 경비가 엄청 절약될 것 같아요!"


라는 나의 질문에 나리 형님은 뜻 밖의 대답을 했다.


"음 꼭 그렇지만도 않아.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거나, 시골 동네를 다닐 때에는 그렇기도 하지만, 노숙을 할 수 없어 작은 마을의 숙소에서 묵어야 할 경우 더블룸을 빌려야 하니까 숙박비가 비싼 경우도 많고, 느린 속도로 여행하는 만큼 식비가 더 들어가니까, 같은 거리라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여행이랑 경비는 비슷한 것 같아."




중국을 여행하며 모은 기차표.


이 때는 잘 몰랐지만,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느낀 점이 있다. 바로 중국의 기차 시스템은 굉장히 편리했다는 것이다. 인터넷 예매가 가능하고, 왠만한 주요 도시는 기차로 모두 이동할 수 있고, 고속열차를 적절히 섞어서 이동하면 비행기보다 빠르고 간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


단,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중국어와 위챗페이의 사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말이지만.. ㅋㅋ




지금은 점점 여행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신장위구르 자치구. 호스텔의 벽면 가득 이 곳을 다녀간 수 많은 여행객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십 년도 훌쩍 넘어버린 낙서부터 최근에 남겨진 듯한 낙서까지 맥전 호스텔의 역사를 함께하고 있었다.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하는 일본인 여행자 나리 상.

(自転車で世界を旅するなりさん。いつも応援してます!)


자전거 수리가 마무리 된 나리 형님이 채비를 하고 먼저 떠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양한 이야기와 견해를 들을 수 있었던 경험 많은 여행자였기에 아쉬움이 컸다. 일본에서, 혹은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고 그렇게 멋지고 존경스러운 여행자 한 명을 떠나보냈다.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던 우루무치. 드디어 그 날이 왔는데도 마음은 싱숭생숭 하기만 하다. 첫 날 느꼈던 버스 안의 평화로움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과 머릿 속만 복잡해진 것 같다. 




내 기분 만큼이나 우중충 했던 우루무치의 날씨.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중국 기차역의 보안 검사대. 외국인 보다 내국인의 검사가 더 까다롭다니..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조차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내가 탈 기차는 Z42 상하이 행 기차. 

(우루무치(乌鲁木齐)부터 씨닝(西宁)까지는 일반 열차로 약 14시간 소요.)


나는 중간 지점인 칭하이성(青海省)의 성도인 시닝(西宁 서녕) 에서 내리지만, 우루무치 부터 상하이 까지 가는 기차가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못해도 3일 밤은 꼬박 달릴텐데.. 




대합실에 가방을 풀고 의자에 앉아 멍~ 하니 있는데, 무엇인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뭐지... 뭐지.. 분명히 가방에 중요한 것들은 다 챙겼는데...'




그렇다. 가장 중요한 라면을 빼먹었다... ㅋㅋ 


이게 무슨 멍멍이 같은 소리냐고 할 수도 있지만, 중국 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내 말에 동감할 것이다. 라면 없는 중국기차는 기차가 아니라는 사실을.. ㅋㅋ 하는 수 없이 역에 있는 매점에서 컵라면을 구입했다. 동네 슈퍼보다 두 배 정도는 비싸지만 그 만큼의 값어치를 하는게 기차 안의 컵라면이기에. 


기억하자.

 한국의 피씨방과 당구장에 짜장면이 있다면 중국 기차 안에서는 컵라면이다. 





컵라면을 사고 얼마 안 있어 열차 탑승 안내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서바이벌의 시작이다. 늦게 가면 가방을 올려놓을 공간이 없다. 좌삼삼 우삼삼 빈 공간을 뚫어가며 무사히 승장장에 진입!




무사히 짐칸에 가방을 올려놓고 무사히 자리에 착석했다. 아직은 쏴롸있는 건강한 두 다리에게 무한한 감사. ㅋㅋ 




빠앙~ 하는 소리와 함께 기차는 정시 출발했다.


인도의 기차에 비하면 비교적 정시에 출발하고 정시에 도착하는 중국 기차들. 이 때는 그게 그렇게 고마운 것인 줄 몰랐지.. ㅋ 


여행자들이 버스와 기차에서 가장 크게 범하는 실수.


여행을 하며 만난 여행자들 중, 가방을 분실을 한 경험이 있는 여행자들이 꼽은 가방 분실의 순간 1위가 바로 기차와 버스가 정차 했을 때이다. 버스와 기차는 출발할 때 까지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꼭! 꼭!!! 꼬~옥!!! 기억해야 한다. 화장실은 기차, 버스가 출발 한 후에 가도록 하자. 휴계소에 정차 할 때에도 귀중품은 항상 소지하고 다녀야 한다.




드디어 라면 타임~~~!!


중국의 컵라면은 상상 이상으로 퀄리티가 좋다. 건더기도 풍부하고 면도 쫄깃쫄깃. 맛도 값어치는 하는 편이다. 단, 중국의 컵라면인 만큼 향신료의 향이 강한 라면들이 많다는 것. 향신료에 약한 사람이라면 한국 컵라면을 미리 준비해 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컵라면은 중국 컵라면 이지만, 먹는 방법은 한국식. ㅋㅋ




미리 사두었던 햄버거랑 뇸뇸.


컵라면과 햄버거의 조합은 삼각깁밥과 컵라면의 조합 만큼이나 어울린다. 이게 다 중고딩 시절의 영향인가 싶기도 하고.




중국 기차안에서 먹는 라면이 맛있는 이유는 그 분위기도 이유로 꼽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다. 괜히 대륙이 아니다. 


라면 한입 창밖 한번 라면 한입 창밖 멍하니. 중국 기차는 풍경 맛집이다.




누가 풍경에 설탕 뿌렸니.




미각과 시각이 모두 즐거운 중국의 기차여행. 내일 아침이면 다음 목적지인 씨닝에 도착한다. 처음 중국여행을 계획했을 때 길어야 두 달 정도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3개월 비자를 가득 채울 것 같다. 그만큼 볼거리도 먹거리도 즐길거리도 다양한 중국. 


우루무치에서의 무거운 감정은 좀처럼 지울 수는 없지만, 다음 도시인 씨닝에서 밀린 블로그를 쓰며 휴식을 취해야겠다.   



다음 글에 계속.


[세계여행 +046일] 중국에서 인생 탕수육을 영접하다. 폭염도 피해가는 고원도시 칭하이성의 시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