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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 여행 Travel

[+066일 중국 구이양] 아하호 국가 습지공원, 현실과 이상의 차이.



구이양에서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게을렀던 요 몇일 간의 자신을 반성하는 뜻에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을 했다. 


짐을 맡기고 호스텔에서 나가기 전, 잠시 의자에 앉아있다가 나도 모르게 헤벌쭉 웃음이 새어나왔다. 앞으로 남은 중국에서의 일정이 완벽하게 정리되었고, 무엇보다 중국 다음의 여행지가 홍콩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설레이고,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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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일 중국 구이양] 지금까지의 이동 거리 총 7099Km. 방문한 도시는 13 곳.






3박 4일간 머물렀던 구이양 캉치아오 호스텔(康桥小舍).


지금은 부킹닷컴에서 예약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중국인 전용 호스텔로 전환되었거나 없어졌을지도 모르는 캉치아오 호스텔.




조금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면 일반 주거용 아파트를 호스텔로 사용해서 전체적인 공간은 좁았다는 것. 하지만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귀양에서 도미토리를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호스텔이었기에 저렴한 가격에 숙박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는 추억의 호스텔이 되어버린 곳.





중국 가정식 식당 赖师傅小八碗 (라이쓰푸 샤오빠완)


오늘은 오랫만에 점심시간에 맞춰 점심을 먹었다. 호스텔 근처에 있는 중국 가정식 식당에서 홍샤오료우(红烧肉 홍소육)을 먹었는데, 지금까지 구이양에서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 달달한 갈비찜 양념 맛이나는 홍샤오료우 덕분에 밥 두 공기를 뚝딱!




오랫만에 맛있는 점심을 먹고 흥이 오른 나. 하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현재 시간은 오후 1시 반, 그리고 쿤밍으로 가는 기차 시간은 저녁 12시. 즉, 나에겐 10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남아있었다.


"뭐... 뭐하지.. 뭘 해야 하지..??"


나.. 분명히 세계여행 중인데, 어째 할 일 없는 백수같은 느낌이.. ㅋㅋ

 



심지어 날씨도 어제부터 비가 주룩주룩. 이런 날은 카페에 앉아서 블로그를 쓰는 것이 가장 탁월한 선택이지만, 구이양에서 한 일이 너~무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대로라면 구이양에 대해서 쓸 내용이 하나도 없게 된다.. ㅠㅠ


프로의식과 위기의식을 가지고 핸드폰을 꺼내 눈을 부릅뜨고 천천히 지도를 살펴봤다.




그렇게 지도를 살펴보는데, 화과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제법 커다란 저수지가 있는 습지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아하호 습지공원?! 가볼까?! 당첨!!!'







낙장불입!! 목적지가 정해지자 마자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화과원에서 49번 버스를 타면 종점인 아하호 습지공원까지는 약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왠지 소나기가 내릴 듯 우중충한 하늘..


버스의 종점인 '아하호 습지공원' 정류장에서 내리면 도보 5분 거리에 아하호 습지공원의 입구가 있다. 그런데.. 하늘색이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이 어둡다.. 그냥 카페에서 블로그나 쓸 껄 그랬나..? 





아하호 국가 습지공원(阿哈胡国家湿地公园) 


운영시간 : 24시간 무료 개방.


입장료 : 무료 (전동 카트 이용 시 편도 10위안)




습지공원의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습지공원의 입구부터 어린이공원(儿童公园) 사이 구간을 운행하는 전동카트는 유료이고 편도 10위안 (한화로 약 1700원) 이다. 참고로, 시내버스가 다니는 출구는 북문 입구 한 곳 뿐이기 때문에, 먼저 걸어갔다가 전동카트를 타고 돌아오거나, 전동카트를 타고 갔다가 걸어서 돌아와도 습지공원 전체를 다 둘러보는데 문제가 없다.


나는 북문 입구부터 어린이 공원까지 전동카트를 이용하고 돌아올 때에는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서 돌아왔다.





나홀로 덩그라니 앉아있던 전동카트. 다른 손님들이 올 기색이 보이지 않자, 나만 태운 채 쿨하게 출발해버렸다.


레츠 꼬우~ !!




입구부터 어린이 공원까지는 도보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지만, 전동카트는 10분 만에 어린이 공원 앞에 도착한다. 참고로, 아하호 습지공원 안에 있는 어린이 공원(儿童公园)은 별도의 입장료를 받는다. (특별하게 볼 것도 탈만한 것도 없어서 패스했음.)





전동카트에서 내려 저수지 풍경을 보기 위해 걸어가는 길. 그런데 보고싶은 저수지 풍경은 나오지를 않고, 원숭이 조심 표지판과 뜬금없는 공룡, 그리고 오래된 건물들만 나온다. 왠지 더 이상 가면 안될 것 같은 위험한 느낌이.. ㅠㅠ




아하호 습지공원 저수지의 이상적인 버전.


바이두에서는 검색했을 때는 분명 이런 이미지가 나왔었는데... 




아하호 습지공원의 현실적인 버전.


현실은.. 저수지로 내려갈 수 있는 대부분의 길들은 막혀있었고, 그나마 카메라를 담장 너머로 올려서 겨우겨우 찍은 사진이 위의 사진이다. 주요 시설이라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높은 담장으로 막혀있어서 저수지를 제대로 보는 것 조차 힘들었다. 


이거슨 관광지의 이상과 현실.. ㅜㅠ





한글이 적혀 있는 아하호 습지공원의 안내 표지판.


바이두에서 찾은 이미지 처럼 멋진 풍경의 저수지를 보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아쉬운대로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가면서 아하호 습지공원의 풍경을 구경해 보기로. 






숲에 둘러 쌓인 좁은 산책로를 따라서 걸어내려 가는 길. 어제와 오늘 계속해서 비가 내린 탓인지 냇가의 물이 흘러넘칠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덕분에 콸콸콸 시원하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지만 말이다.




불어난 물에 잠겨버린 냇가의 징검다리... 혹은 저 세상 다리...?





세계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좋아하는 일이 하나 생겼다. 


그 것은 바로 사진을 찍는 일이다. 매일 매일 마주치게 되는 색다른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퍽이나 재미있는 일이다. 아직 사진과 카메라에 대해서는 문외한 편이지만, 좋아하는 느낌, 분위기의 풍경이 사진에 담겼을 때의 기분은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좋아하는 일을 아무런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되고 일상이 되면 줄곧 압박감과 부담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업이지만 마음 깊이 즐길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힘들다.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다보면, 본업인 악기연주를 처음 시작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얼마나 순수했고, 열정적이었으며, 즐거웠었는지. 서툴지만 설레였던 그 때의 두근거림이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산책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며 사진을 찍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돌아갈 때에는 다시 49번 버스를 타고 화과원으로 향했다.




되게 분위기 잡다가 뜬금없지만, 저녁은 KFC 에서 먹었다.


구이양에서 너무 별로인 음식들만 먹은 탓에, 내 입과 위도 잠시 기름지게 행복하라는 의미에서.. ㅋㅋㅋ




매일 밤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던 구이양 화과원 주상복합 단지.


이번엔 경유지의 느낌으로 방문했기에 휴식만 취하고 가지만, 다음에 오게 되면, 이번에 못 본 황과수 폭포랑 포광옌, 마오타이마을 꼭꼭꼭 구경하러 가야지. 안녕! 또 만나자!!!





구이양 기차역 (贵阳站).


기차 출발 1시간 30분 전. 어제 기차표도 미리 끊어놨고, 화과원에서 구이양역까지도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별 달리 할 일도 없던 나.. ㅋ 저녁 10시 30분 쯤 매우 매우 이르게 구이양 기차역에 도착했다.




오늘 내가 타야 할 기차는 K723호 쿤밍(昆明)행 열차.




구이양역의 대합실 풍경.


보통 중국 대도시의 중앙역은 역사가 오래된 역이 대부분이었는데, 구이양 기차역은 최근에 지어진 듯 건물의 외부도 내부도 신식에 가까웠고,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것 뿐!




그런데!! 내가 타야 할 쿤밍행 K723호 기차가 15분 늦게 도착을 했다. 하품을 쩍쩍하며 속으로 온갖 불평불만을 하고 있던 나. 무심코 보게 된 전광판에 무려 1시간 37분 씩이나 딜레이가 된 기차와 '도착시간 미정' 이라고 쓰여있는 기차 스케쥴이 번뜩! 하고 눈에 들어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 15분 연착은 연착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세상 감사한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간사한 닝겐.. ㅋㅋㅋ





기차역 대합실에서의 긴 기다림, 개찰구를 통과하면 길게 뻗어있는 중앙 통로. 




승객들 간의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지는 중앙 통로를 지나,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보이는 중국 기차역의 모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중국의 풍경 중 하나이다.


웅장한 역의 규모, 끝이 보이지를 않을 만큼 기다란 기차, 세계를 여행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 아닐까.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새로운 도시와 마주하게 되는 마법같은 중국의 기차여행. 세계여행 중 가장 기억나는 순간을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