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3일.
일본인 친구 나리씨 덕분에 땅 끝까지 가라앉았던 기분을 잠시 잊을 수 있었던 즐거웠던 저녁 식사. 오늘은 나리씨가 우루무치를 떠나는 날이다. 어제 저녁을 먹은 후 마지막 인사까지 다했었는데, 12시가 조금 넘은 점심 때 즈음, 나리씨가 씁스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호스텔로 돌아왔다.
중국부터 시작해 중앙아시아까지 자전거로 횡단하는 여행을 하고 있는 나리씨, 우루무치로 오는 길에 자전거에 이상에 생겼다고 한다. 수리를 하지 않는 이상 여행을 계속 할 수 없기에 이틀 전 우루무치 시내에 있는 자전거 수리점에 자전거를 맡겨놓은 상태였는데, 오늘이면 될 줄 알았던 자전거 수리가 내일로 연장되었다며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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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043일] 세계 최고의 양꼬치를 맛보고 싶다면? 양꼬치의 원조 신장위구르 자치구.
나리씨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나는 내심 기뻤다. 간만에 만난 좋은 친구와 조금 더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악마) 나리씨도 자전거 없이는 여행을 지속할 수 없기에 곧 현실을 받아드리는 눈치였다. 나는 오늘 오전에 밀린 블로그를 쓸 예정이었기 때문에 낮 시간은 각자 일정을 보내기로 하고,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호스텔 근처의 번화가.
중국의 호스텔들은 여행자가 사용할 수 있는 주방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다. 저렴한 한 끼 식사를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지만, 오늘 같이 뭘 먹어야 할지 도무지 결정을 할 수 없는 날에는 내가 만든 요리가 사무치게 그립다.
이렇게 입맛 없는 날, 챔기름 바른 김에 흰 쌀밥이랑 오징어 진미채 싸서 먹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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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마나 맛있게요~! ㅋㅋㅋ
하지만 여기는 중국. 오징어 진미채가 있을리가 없다. 한국식당이 있기는 했지만 오징어채 이 외의 다른 한국음식이 땡기는 것은 아니었기에 패스. 어제 갔던 우육면 가게는 면이 안 땡겨서 패스.. 그렇게 거리에서 30분을 방황하고 방황하야, 돌고돌고 또 돌아 번화가 초입에 있는 한 식당에 들어갔다.
무작정 들어간 우루무치의 맛집 샤오후쫘판(小胡杨抓饭)
가게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는데,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져오는 대신 손가락으로 벽을 콕콕 가르킨다. 손가락을 따라 시선이 향한 곳에는 한 눈에 들어오고도 남는 굉장히 심플한 메뉴판이 붙어 있었다.
메뉴판을 보자마자 정말 1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주문을 했다. 가장 위에 있는 가장 비싼 메뉴가 이 가게의 대표메뉴임에 틀림없었다.
얼른 밥 주세요. 현기증 날 것 같단 말이에요... ㅠㅠ
나의 온 신경과 시선이 주방에 쏠려있는 와중,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하나 있었다. 주방 옆 테이블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당근. 여기 토끼 백 마리 키워요? ㅋㅋㅋ
하지만 곧 당근의 정체는 밝혀졌다. 토끼 백마리를 키우기 위한 당근이 아니라, 나를 토끼로 만드는 당근이었다. 이게 무슨 멍멍이 같은 소리냐고 생각하겠지만 곧 이유가 나온다.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만 더 읽으면 된다.
手抓饭 쇼우쫘판.
(25위안, 한국 돈으로 약 4000원)
이 식당의 메뉴에 적혀있는 이름은 小锅抓饭 이라고 적혀있지만 메뉴이름만 다른 뿐 신장 위구르 지역이라면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쇼우쫘판이다.
먹을 당시에는 아무런 정보도 생각도 없이 그냥 맛있게 냠냠 먹기만 했는데, 이 음식이야 말로 양꼬치와 더불어 실크로드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음식이었다.
쇼우쫘판 (手抓饭)
쇼우쫘판은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손으로 집어먹는 밥' 이라는 뜻. 위구르어로는 ‘polo’ 라고 발음 되는데, 터키의 유명한 음식인 '필라프, pilav', 페르시아 지역의 '팔라우, palaw' 와 이름도 비슷하고 조리방식도 비슷하다. 손으로 집어먹는 밥이라면 떠오르는 인도의 '비리야니' 역시 가까운 친척뻘 되시겠다. 즉 실크로드가 뻗어 있었던 지역에서 널리 즐겨먹는 음식인 셈.
그리고 드디어 밝혀지는 당근의 정체.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대량의 당근 채. 이 음식의 이름은 凉拌红萝卜 (량빤홍뤄뽀) 로, 한국어로 말하자면 '당근 냉채' 정도로 부를 수 있겠다.
쇼우쫘판은 거의 기름에 담겨져 있다시피 한 매우 기름진 밥이다. 때문에 입을 가셔 줄만한 김치같은 존재가 필요한데, 이 당근은 정말 쇼우쫘판의, 쇼우쫘판에 의한, 쇼우쫘판을 위해 만들어진 완벽한 반찬이었다.
아까 주방에 옆에 놓여있던 당근?! 전~ 혀 많은 양이 아니었다. 눈치보여서 두 번만 리필했는데, 자꾸만 당근에 눈이 간다.. 그렇다 한번 먹으면 점점 토끼가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쇼우쫘판 한 입, 당근 한 입.
쇼우쫘판 한 입, 당근 두 입.
쇼우쫘판 위 에 당근 얹어서 한 입.
뇸뇸뇸.
마지막 입에 남은 기름기는 향긋한 차로 마무리!!!
하려고 했지만, 메뉴에 있는 요거트가 너무 신경쓰여서 하나 주문했다. ㅋㅋ
요거트는 중국어로 어떻게 말할까?
요거트의 중국어는 쑤완나이(酸奶)
그렇다면 우유는? 뇨우나이(牛奶)
마트에서 헷갈리지 말아요! ㅋ
수제 요거트 느낌이 풀풀나는 비쥬얼.
과감하게 한 입 먹었는데!!! 우와..... 엄청 셔.... ㅠㅠ 설탕 1도 안 들어있는 건강한 맛.
나는 건강을 포기하고, 맛을 선택했다.
설탕 탕탕탕 때려 넣기. 설탕 알갱이 커서 녹지 않고 오독오독 씹힌다. ㅋㅋㅋ 먹다보니 신맛이 적응돼서 나름 먹을만했다.
결제는 위챗페이로. 넘나 편리한 것!!
한국도 점점 카카오페이나 삼성페이 같은 결제시스템이 확산 되는 듯 하다. 중국의 위챗페이처럼 잘 정착됐으면 하는 바램.
어렸을적 부터 당근을 별로 안 좋아했던 나. 중국에서 당근의 매력에 흠뻑 빠질 줄 이야.. 어렸을 적에 저 당근냉채를 먹어봤다면 당근반찬 달라고 투정하는 어린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좋은건가..? ㅋㅋ
맛있는 점심을 먹고 호스텔에 돌아와서 열심히 블로그작업을 했다. 원래 글 쓰는 것이 직업이 아니다보니 포스팅 하나를 올리는데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에도 꽤나 많은 시간을 들이고, 중국 바이두 백과에서 중국어를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니 많이 많이 읽어주시길.
이 것은 기승전 구걸하기. (굽신굽신)
블로그 작업을 마치고 나리씨와 수다를 떨고 있는데, 아비나쉬와 다른 여행자가 합세를 했다. 여행이야기는 하다보면 정말 끝이 없다. 시계도 안보고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덧 저녁 10시. 배고픔이 한계에 달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호스텔 밖으로 나왔는데 대부분의 식당이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어떡하지 하고 고민하던 찰나, 아비나쉬가 "브로~! 그랜드 바자르로 가보는 건 어때?" 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었던 나리씨, 영국에서 온 토마스, 아비나쉬, 그리고 나 까지 4명은 무작정 택시를 타고 그랜드 바자르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려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조명을 켜고 한껏 멋 내고 있는 그랜드 바자르였다.
'저녁 10시 이후에는 혼자서 밖에 나가지 않기.'
세계여행 중 안전을 위해서 내가 스스로에게 정한 규칙이다.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볼 수 없었을 풍경이기에 함께해준 친구들에게 더 감사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갬성적인 순간도 잠시.. "금갬성"도 식후경 아니던가. 열심히 걸으며 불이 켜진 식당들을 차례로 들려 본 결과, 대부분 간판만 켜놓은 채 문을 닫았거나 이미 마감이 끝나 손님을 받지 않는 상태였다.
마지막 희망을 담아 들어간 식당! 다행히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멘.. 관세음보살.
관광지 주변이라 다른 식당들에 비해 조금씩 가격이 비싸기는 했지만, 더 이상의 선택지는 없었기에 앉아서 음식을 주문했다.
여행 정보를 주고 받는 나리씨와 토마스. 여행자들의 수다는 끝이없다.
이제는 없으면 정말 정말 서운한 차.
한국에서 식당갔는데 김치가 안 나오면 왠지 서운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아마 중국에서는 차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제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시키는 양꼬치. 우루무치의 양꼬치는 진리요, 생명이다. 다들 배가 고플대로 고파있는 상태라 1인 3꼬치 씩 주문!
곧바로 따라 나온 커다란 난 두 판까지 합세!
양만두로 건배~~!
순식간에 양꼬치를 클리어한 우리는 추가로 양고기 만두를 주문했다. 참고로 우리 옆에 식당 사장님의 아들이 앉아서 영어로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며 계속 영업을 했다. 저 양고기 만두도 사장님 아들의 영업 결과. 사장님! 아드님 참 잘 두셨어요. ㅋㅋ
속이 꽉찬 양고기 만두! 다들 만족해 하며 먹었다.
후식으로는 요거트. 설탕 탕탕탕 뿌리는거 잊지 말기!
사장님 아들의 영업 성과 2.
우리 가게 양 다리 찜이 그렇게 부드럽고 냄새가 안 난다면서 꼭!!! 먹어봐야 하는 메뉴라며 적극 추천하던 사장님 아들. 진짜 영업 소질이 타고난 듯 했다.
하지만 모두 배부르게 먹은 뒤라 많이는 주문하지 못하고 1인 분만 주문했는데, 정말 냄새도 안나고 부드러웠다. 젤라틴을 먹는 느낌이었달까..
사장님이 서비스로 주신 전통음료. 이 가게만의 레시피로 만든 거라고 하셨는데, 정확한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다. 아니 알려주셨는데 알아듣지 못했다... ㅋㅋ
초점 무엇..?
음료를 날리고 뒤의 테이블을 잡는 캐논의 능력. 칭찬해~
우리의 반응이 좋자, 주방에서 음료에 들어가는 재료를 가지고 나와 보여주신 사장님. 덤으로 견과류 까지 받아먹었다.
친절하신 사장님과 아들 덕분에 즐거웠던 저녁 식사. 사진을 요청했더니 '찍으려면 제대로 찍어야지!' 라며 시야를 가리는 테이블 까지 뒤로 밀어버리셨던 사장님. 성격도 화끈하셨다. ㅋ
잘가라며 가게 앞까지 배웅해주신 사장님. 함께 찍은 사진은 나중에 메신저를 통해 사장님께 보내드렸는데 아주 좋아하셨다.
조금 다른 이야기 이지만,
사진 속의 사장님과 사장님의 아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신장 위구르 지역의 주민들은 중국 인구의 주류를 이루는 '한족' 과는 생김새가 다르다. 물론 지금은 중국의 신장위구르 이민 정책에 의해 신장위구르 지역에서도 한족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위구르인' 인 우루무치의 거리를 걷다보면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온 기분마저 들 정도이다.
소수민족이 주류를 이루는 신장 위구르 차치구. 하루 빨리 이 숨막히는 공기가 이 곳에서 사라지길 바래본다. 그리고 더 이상의 다툼없이 평화로운 공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밤에 더 아름다운 그랜드 바자르. 못 봤으면 후회할 뻔.
맥주 한잔이 고팠던 나리씨와 나는 호스텔로 가는 길에 맥주와 간단한 안주거리를 사서 새벽 두 시가 넘도록 대화를 했다. 이제는 정말 내일이면 떠나는 나리씨. 아니 나리형님! ㅋ 헤어지는 건 아쉽지만 일본에서 또 만나기를 기약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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